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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직장(S-OIL) 다닐 때 CEO한테 이메일 보낸 썰

오일전문가 2022. 10. 1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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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얘기하지만 사실 나는 전 직장에 적이 많았다. 무슨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책임에 최대한 충실하려고 나름 노력을 했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소위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또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짬밥"으로 일을 대충 넘어가려는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꽤 많았다.

전 직장에서 마지막으로 맡았던 직책이 생산과장이었는데 사건 사고가 생기면 즉시 선 보고를 하고 가능한 한 빨리 원인과 대책을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가끔 곤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는데 사고의 이유가 단순히 공정/기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람, 즉 Human Error에 의해 발생할 때이다. 그렇다고 사실을 뒤로 한채 거짓으로 보고를 한다면 나의 직무유기가 될 뿐만 아니라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기에 사실대로 보고를 하고 실질적인 원인과 대책을 보고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정비부 인원의 단순 착각으로 인해 밸브 관련 계기가 방향이 뒤바뀐 채 설치된 적이 있었고 나중에 상황을 파악해보니 이로 인해 내가 맡은 공정 전체가 Shut Down 되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상부에 그대로 보고를 했고 며칠 뒤 개인적으로 알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받은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상부에 보고한 내용이 해당 정비 인원에게 어느 경로를 통해 구두로 전달이 되었고 이를 알게 된 당사자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어느 노조 담당자에게 회식 중 얘기를 했고 해당 노조 담당자는 아마 취기에(?) 늦은 시각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밤길을 조심하라는 둥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댔다. 나는 통화 내용을 그대로 녹음한 후 인사과에 다음날 보고를 했다. 인사과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임원들에게 해당 내용을 보고 한 후 조치하겠다고 했으나... 결국에는 그냥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됐던 적도 있었다.

하여튼 이런 식으로 비슷한 일이 사실 꽤 많았다. 공장 긴급 수리를 위해 필요한 부품에 대해 논의를 하는데 생산과장인 내가 지원부서에 개인적인 부탁을 하는 양 "을"의 입장이 되어 나이 많은 상대에게 별 말 같지도 않은 잔소리를 계~속 듣다가 결국 폭발해서 반말로 전화를 끊고 나서 상대 지원 부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물론 해당 이메일은 공식적이었고 CC에는 공장장을 포함 온갖 임원을 다 넣었다. 생산지원부서가 지원을 하는 게 당사자들이 회사에서 맡은 당연한 직무인데 무슨 벼슬인양 "갑"처럼 행동하는 게 너무 꼴 사나웠다. 온갖 임원들을 참조에 넣어서 그랬을까, 일은 해결되었다. 물론 그 사건 이후로 당사자와 나는 퇴근 버스에서 만나도 서로 인사 같은 건 없고 서로 쌩 깠다.

S-OIL을 10년 다닌 후 퇴직할 때는 인사과와 껄끄러운 일이 발생했다. 우리나라 법 상 근로자는 1년을 꽉 채워 만근을 해야 다음해에 연차가 발생한다. 나의 경우 12월 25일이 마지막 근무일로 협의되었고 남은 5~6일 정도는 휴가를 신청했고 직상사에게도 모든 결재를 받았다. 모든 것이 결재 처리되었으나 인사과의 누구 생각인지는 몰라도 신청한 휴가는 취소 처리하고 남은 휴가 일수는 연차 보상으로 처리하겠다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이유는 뻔하다. 휴가가 취소되면 남은 5-6일을 남기고 만근을 못하고 퇴직처리가 되니 다음 연도에 발생할 연차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소위 대기업이 이렇게 쪼잔하게 일을 처리하나 싶을 정도로 믿기지도 않았다. 바로 인사과에 가서 대면 상담을 했다. 휴가 신청은 나의 권리이고 인사 규정대로 결재자의 승인 처리를 받았으니 인사과에는 통보만 갈 뿐 나의 정당한 휴가 신청을 취소할 권리가 없다고 설명을 해줘도 담당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사 담당자를 찾아가기 전에 사실 나는 몇 가지 정보를 모아두었다. 그동안 정비기간을 포함 회사 시스템에 있는 출퇴근 시각 그리고 OT 비용을 인사규정대로 지급하지 않는 상황과 관련된 인사과 협조문 등. 바로 내밀고 나의 휴가를 일방적으로 취소한다면 나는 법대로 OT 비용을 소송을 통해서라도 받아낼 것이다. 그 비용이 훨씬 클 테니 잘 생각하라고 했다. 

돌아온 후에는 CEO에게 이메일을 바로 보냈다. 참조에는 CEO실을 넣었다. S-OIL CEO는 사우디인이기 때문에 이메일은 영어로 작성을 했다. 지금까지도 CEO가 이메일을 봤을지 아니면 CEO실이 조치를 해서 해당 이메일을 삭제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메일을 보낸 후에 인사 담당 임원이 나를 불러 딜을(Deal) 했다. 나의 마지막 휴가 신청은 취소 처리하지 않고 다음 해에 발생할 휴가에 대한 연차보상은 그대로 다 하는 대신에 내가 신청한 어머니 환갑 축하비는 지급하지 않는 걸로. 

규정대로 할 게 아니면 도대체 왜 인사규정을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언젠가는 규정 그대로 적용되어 대한민국 모든 근로자의 권리가 지켜지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래본다.

S-OIL과의 관계는 이렇게 씁쓸하게 청산이 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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